언론속의 무총인2017.03.07 18:15


기상천외한 아이템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는 MBN <끝장대결! 창과 방패> 4회에서는 뜨거움을 참아내는 차력사와 200도 넘는 숯가마의 대결이다.

MC와 방청객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숯가마 온도에 놀라며 그곳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겠냐며 모두 혀를 내둘렀다.
숯가마는 생닭도 단숨에 구워 삶을 정도롤 펄펄 끓는다.

반면 십수 년간 열기는 견디는 수련을 해온 차력사 오재성 씨 내공도 만만치 않다. 

단단하게 잡힌 근육과 검게 그을린 피부색에서 고된 수련의 흔적이 엿보인다.

‘끝장 대결! 창과 방패’를 위해 간단히 차력쇼를 준비한 오재성 씨. 팔에 촛농을 떨어뜨려 굳을 때까지 참기, 송판 3장을 겹쳐놓고 손바닥으로 쳐서 대못 박기와 각목에 대못 10개를 박아놓고 차례대로 손으로 쳐서 박기 그리고 팔에 줄을 다 빨래집게 하나씩 꼽고 한 번에 당겨서 빼기 마지막으로 손에 수건을 감아서 검을 통과시키는 차력쇼를 선보인다. 




숯가마 온도에 기죽지 않고 오히려 자기능력을 뽐내기 위해 목과 검 등을 갖고 묘기를 부리는 차력남을 본 조형기기 망치를 들고 자연스레 포즈를 취하자 차력남은 당황했다. 조형기는 영화 뽕을 통해 자연스레 몸에 밴 자세라며 싱긋 웃어보였다고,MC들은 숯가마와 관련된 저마다의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숯가마 마니아인 박수홍은 최근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사우나를 찾아서 땀을 빼고 온다고 하자 , 다른 패널들은 외로워서 밤에 잠을 못 자는 것 아니냐며 박수홍에게 면박을 주었다고.

한지우는 뜨거운 숯가마를 보고 놀라 엉뚱한 말을 내뱉는다. 

차력사가 불을 몸에 대거나 입에 넣는 등 화려한 묘기를 선보이자 차력사를 보고 요가파이어를 했다고 주장하며 녹화장을 순식간에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지상렬은 “한지우씨도 숯가마을 찾아 뇌찜질을 해야한다.: 며 재치있게 받아쳤다고.

논리정연한 김태훈과 직감이 뛰어난 조형기 간 대결도 눈에 띈다.

매회 주제 때마다 논리정여하게 자기 의견을 정리해 승패를 맞혀온 김태훈이 이번에도 명석한 두뇌를 뽐냈다.
차력남과 숯가마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순간, MC들은 경험과 직감에 따라 방향을 정했다.


MC들 사이에서 잘난척쟁이라고 귀여운 비판?을 받고 있는 김태훈은 숯가마와 차력사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다가 끝내 차력사로 결정!

매주 목요일 밤 11시에 방영되는 창과방패는 성형미인을 맞히는 무속인, 명품을 구별해내는 감별사 등 기상천외한 대결을 선보이며 화제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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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무총인2013.04.08 10:01

본회 회원단체인 한국검예도협회(회장 장효선)의 검예도가 미국에 진출하고 있다는 소식이 뉴시스와 장효선회장을 통해 알려졌다.

 

 

 

 

 

 

【더치스카운티(美뉴욕주)=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한국의 고유 검술 ‘검예도’가 미국 땅에서 소리없이 전파되고 있다. 지난 13일 뉴욕주 더치스 카운티의 ‘마스터 권(Master Kwon)’ 도장에서 검예도 창시자인 장효선 한국검예도협회 회장이 미국인 사범들을 대상으로 검예도를 지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장효선 회장은 권오남 관장이 이곳에 도장을 개척한 12년 전부터 매년 수련회를 열어 한국의 전통 검술을 보급하고 있다. <사진=Newsroh.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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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무총인2012.09.28 12:08

 

 

한민대 정현도 교수(사진)가 지난 21일 충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6회 대한민국 무예대제전'에서 우승을 차지, 지난 대회에 이어 2연패를 달성했다.

사단법인 한국무술총연합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후원한 이번대회에는 태권도를 비롯 전국의 전통무예 30개 무술협회 100개 팀 3000여명이 출전 성황을 이루었다.

한민대학교 태권도외교학과 주임교수인 정 교수는 이번 대회에 태권도 시연부문에 출전 본인이 직접 창작한 품새를 선보여 참가한 선수, 임원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정 교수는 "이번 대회에 대비하여 그동안 강화훈련을 통해 고난도 발차기, 창작품새 등 꾸준히 훈련해 온 결과 우승하여 무척 기쁘다"며 "앞으로도 계속 태권도 지도자로서 각종 연구 활동을 통하여 국기 태권도를 한층 더 발전시키는데 노력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영민 기자 lym1616@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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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무총인2012.09.24 01:15

 

한무총산하의 대한종합무술격투기협회의 시초는 1977년 협회가 발족되고 1979년 5월 정식으로 문교부 사회단체로 등록된 사실이다.

서대문구 연희동에 전용 체육관이 생기고, 초대회장으로 김귀진회장이 되었다.

30년이 넘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김귀진상임부회장님의 젊었을때의 사진도 있다.  

 

1981년 8월 22일 동아일보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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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무총인2012.08.28 14:14

<인터뷰> 택견 보유 정경화씨 "이젠 세계화해야"


 

택견 인류무형유산 등재 (충주=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택견이 유네스코의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택견 보유자 정경화(가운데)씨가 28일 충북 충주시 택견전수관에서 제자들에게 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11.11.28 nsh@yna.co.kr

(충주=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택견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는 민족혼과 정신이 깃든 우리의 전통무예가 한국을 넘어 세계인의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 택견의 예능보유자인 정경화(57)씨는 28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번 등재로 우리 전통문화의 전승ㆍ보존 가치를 인정받게 돼 기쁘다"면서 "이제부턴 택견의 세계화를 위해 힘을 모을 생각"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정씨는 이어 "등재도 중요하지만 예능 보유자를 중심으로 올바른 문화재의 원형이 후손들에 계승될 수 있도록 하는 사후관리가 더 중요하다"며 전승ㆍ보급 대책을 강조했다.

그는 "예를 들면 태권도에 비해 택견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훨씬 낮다"면서 "육ㆍ해ㆍ공군 사관학교의 정규 체육 과목으로 택견을 지정하는 것도 전승과 보급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택견 보유자 정경화씨의 발차기 (충주=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택견이 유네스코의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택견 보유자 정경화(가운데)씨가 28일 충북 충주시 택견전수관에서 발차기를 지도하고 있다. 2011.11.28 nsh@yna.co.kr

그는 또 "10여년 전부터 세계무술축제와 세계택견대회가 열린 충주에는 택견전수관 등 관련 인프라가 비교적 잘 구축돼 있다"면서 "이런 인프라를 잘 활용해 외국인들이 택견을 체험할 수 있도록 브랜드화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택견의 해외 보급과 관련, "무술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많은 해외 무인들이 매년 충주를 찾고, 국가 간 무술 교류 협약도 맺어지고 있다"면서 "미국, 덴마크, 노르웨이, 우즈베키스탄, 중국 등에 머지않아 택견 지부가 설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늘날 태권도가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전한 것은 관계자들이 수십년 동안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며 "다른 무예인들에게 택견을 전수하는 기회를 확대하면 택견의 세계화는 10년 내에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nsh@yna.co.kr



 

 

 

 

손뼉치는 택견 보유자 정경화씨 (충주=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택견이 유네스코의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택견 보유자 정경화씨가 28일 충북 충주시 택견전수관에서 제자들의 훈련 모습을 보며 손뼉을 마주치고 있다. 2011.11.28 n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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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무총인2012.08.28 12:25

 

 

 

[人+間 (인+간)] 한국 공수도 대부 정도모 40여 년간 대한공수도연맹을 지켜 온 정도모 회장이 다부진 표정으로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아버지, 금이에요. 지환이가 다시 해냈어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금메달이에요."

작은아들 권홍이가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저기서 달려온다. 나(대한공수도연맹 회장 정도모)도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온다. 이렇게 기분 좋은 날이 있을 수가 있나. 지금 여기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다. 이곳에서는 제11회 아시아공수도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다. 남자개인대련 60㎏급 이지환이 오늘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사정을 잘 아는 일본, 태국 등 다른 나라 협회 관계자들이 와서 축하를 해 줬다. "정 회장,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요. 권홍 씨도 아버지 옆에서 정말 수고 많았어요. 이제 한국 공수도에도 활짝 봄꽃이 피겠네. 심판 보는 형 일홍 씨도 오라고 해요. 같이 기념 사진이라도 찍게. 이렇게 좋은 날 사진 한 장 안 찍으면 되겠나."
문득, 지난해 중국 취안저우에서 열린 제10회 대회 때 일이 떠오른다. 올해는 환하게 웃고 있지만 그때는 정말 눈물을 많이 흘렸다. 지난해에는 금을 두 개나 땄다. 올해보다 잘했는데 왜 울었을까? 대한공수도연맹을 만든 지 40여 년 만에 처음 아시아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이 우승했기 때문이었다. 아시안게임 등에서 늘 예선탈락만 도맡아 하던 우리가 금을 따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아버지, 이제 그만 우세요. 이렇게 기쁜 날 왜 눈물을 흘리고 그러세요. 남들이 다 보잖아요. 여기 중국까지 와서 우리 애들이 금메달을 땄는데 가서 축하인사를 해 줘야지, 여기서 이렇게 우시기만 하면 어떻게 해요?" 지난해 권홍이는 그렇게 말했었다.

대회 2연패를 이룬 지환이 손을 잡고 "잘했다"며 등을 두드려주다 보니 늘 설움만 받던 과거가 생각난다. 1969년 대한공수도연맹을 만든 뒤 매년 대한체육회 문지방을 넘나들었다. 체육회 가입신청서를 제출하기 위해서였다. 결론은 언제나 똑같았다. 반려. 체육회 가입을 거부당한 뒤 계단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 눈물을 삼키며 담배를 피우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는 이런 생각에 내 스스로가 불쌍했다. '참, 나도 답답한 사람이다. 그렇게 문을 두드려도 안 되면 일찌감치 포기해야지, 그게 뭐라고 죽어라고 매달리고 그러냐. 참, 네 인생이 비참하다.'

고개를 떨군 모습이 안 돼 보였던지 일부 직원들은 계단으로 찾아와 위로해주기도 했다. "엇! 정 회장 여기 계셨네. 미안해요. 드릴 말씀이 없네요. 우리도 이렇게 하는 게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지요. 가져오신 서류는 완벽해요. 규정대로만 하면 안 해 줄 이유가 없죠. 하지만 위에서 해 주지 말라니까 시키는 대로 해야지.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요."

늘 배척당하기만 하던 설움은 2001년에 끝이 났다. 그해 인정단체로 승인을 받아 대한체육회에 가입했던 것이다. 30년이 넘도록 공수도를 배척해 오던 대한체육회가 부산 아시안게임 때문에 할 수 없이 공수도연맹에 손을 내밀었다. 인정단체 승인 회의를 마치고 내려오던 계단에서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권홍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계단에서 흘린 눈물은 얼마나 됐을까?

공수도를 시작한 것은 여섯 살 때부터였다. 연세도 성함도 모르는 중국인 할아버지가 공수도를 가르쳤다. 매일 영주동 미군부대 옆 공터에서 혼자 운동을 하던 할아버지가 너무 대단해 보여 주변을 서성거렸더니 운동을 하게 해 주셨다. 그 자리가 지금은 코모도호텔로 바뀌었다. '꼬마야, 너 몇 살이니? 너도 운동 하고 싶니?' 아마 그분이 처음 하신 말씀이 그랬을 것이다. 중국말을 하셨으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에서 그런 이야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할아버지하고 매일 운동하는 게 참 좋았다. 한국전쟁이 막 끝나고, 먹을 것도 제대로 없던 시절에 여섯 살 꼬마가 심심풀이로 할 수 있는 게 생겼으니 정말 재미있었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지금 이렇게 공수도를 천직으로 삼게 됐을까. 세월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있었더니 어느새 그분과 비슷한 나이가 됐다.

초량에서 공수도장을 하던 이덕우 관장도 생각이 난다. 그분께 비로소 공수도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그때 배운 실력이 내 평생을 먹여 살렸다. 당시는 아무 생각 없이 운동만 하고 참 좋았던 시절이었다.

피할 수 없는 천직이 공수도였던 모양이다. 겨우 나이가 열여덟 살밖에 되지 않던 경남공고 2학년 때 직접 공수도 체육관을 차렸으니 말이다. 그곳이 바로 부산 부곡동 기찰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어린 나이에 체육관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 참 신기하다. 돈이 없어 시내에서는 체육관을 열지 못하고 친구 아버지 도움을 받아 4H구락부 회관 모퉁이에서 공수도를 가르쳤다. 겨우 나이 열여덞 살짜리가 체육관 관장이라며 큰소리치고 다녔으니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으리라. 동네 영감님들 사이에 난리가 났다. "깡패를 키운다"며 동네에서 쫓아내려고 아우성이었다. 할 수 없이 있는 돈, 없는 돈을 긁어모아 막걸리와 두부 몇 모를 사들고 가서 영감님들을 구워삶은 덕분에 겨우 체육관을 할 수 있었다.

운동을 같이했던 친구들 생각이 난다. 공수도를 함께하다 태권도로 돌아선 친구들. 이름을 밝히면 다들 처지가 곤란해지겠지. 다 이해한다. 그때는 모두 어려웠다. 태권도를 하지 않으면 대한체육회 가입을 안 시켜 준다니 할 수 없이 공수도를 버리고 태권도로 도장 이름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나도 태권도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무도라는 게 남을 때리고 해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닌데 사람을 직접 가격하는 태권도는 무도 정신에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태권도로 전향했으면 지금쯤 대한태권도협회 원로가 됐을 텐데….

1969년 뜻이 같았던 사람 몇몇과 함께 대한공수도연맹을 만들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일이었다. 이후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뀐 끝에 오늘날 이름을 갖게 됐다. 아시아공수도연맹(AKF)과 세계공수도연맹(WKF)에도 가입할 수 있었다. 대한공수도연맹을 꾸리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한 해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 이리저리 안 뛰어다닌 데가 없다. 명색이 국가대표라는 선수들을 데리고 국제대회에 나가면서 여비가 없어 선수들로부터 항공료를 걷어야 했던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작 대회에 가서는 제일 싼 숙소만 찾아다녀야 했다. 돈이 없어 현지 식당은 이용하지 못하고 늘 숙소에서 몰래 밥을 해 먹어야 했다.

 

정도모(왼쪽) 회장이 부산 동래구 안락동 중앙도장에서 아들 권홍 씨와 함께 훈련을 하면서 무더위를 잊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공수도에 미친 아버지 때문에 아이들도 공수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둘째 딸 미진이는 운동이 싫다고 끝까지 버텨 유일하게 공수도 가족이 되지 않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뒷산에 운동하러 가던 시절이 떠오른다. 큰딸 미경이와 큰아들 일홍이, 막내 권홍이까지 넷이서 항상 함께 운동을 했다. 미경이는 운동을 참 잘했다. 항상 국제대회에 아버지를 따라 다녔다. 그리고 대회 때마다 좋은 성적을 거뒀다. 문득 남편을 따라 베트남에 간 딸이 보고 싶다. 미경아, 잘 살지? 그곳에서도 운동 열심히 하고 있어? 일홍이도 선수 시절에 실력이 참 좋았다. 우리 공수도에 인재만 많았어도 일홍이가 일찌감치 은퇴를 해서 심판이 될 필요도 없었는데…. 그래도 지금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국제심판으로도 활약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기만 하다. 막내 권홍이는 혼자 용인에 올라가 대학원에서 공부도 하면서 체육관을 운영하느라 힘들 텐데 언제나 웃는 표정이다. 

 

일홍아, 권홍아. 지금 내가 믿는 것은 너희 형제뿐이다. 아직 나이가 젊고 경험은 부족하지만 대신 패기와 추진력은 아버지가 봐도 대단하구나. 너희들에게 공수도를 가르친 것은 앞으로 한국 공수도를 이끌고 나가라는 뜻이라고 생각해 다오. 아버지가 불모지 한국에 뿌린 공수도 씨앗을 너희들이 잘 가꿔 예쁘고 맛있는 곡식으로 만들어주길 바란다.

너희들이 앞으로 할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너희들도 잘 알다시피 대한체육회에 가입은 했지만 공수도를 보는 눈은 30년 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다. 전국체육대회 정식종목 채택만 해도 그렇다. 공수도가 2004년에 전시종목이 됐는데 아직까지도 전시종목이다. 대한체육회에 가입하고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이면서도 전국체육대회에는 끼지 못하는 스포츠는 공수도뿐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른다. 심지어 운동하는 사람들도 전혀 신경을 안 쓴다.

인천 아시안게임 해프닝도 대한민국 공수도의 아픈 현실이다. 인천시와 대한체육회가 대회를 유치할 때만 해도 공수도를 정식종목에 넣겠다고 했다가 뒤늦게 빼겠다고 하는 바람에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와 아시아공수도연맹이 발칵 뒤집혔지. 더군다나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도 그랬으니까. 부산시에서 처음에 대회를 유치할 때만 해도 공수도를 정식종목으로 넣었다가 대회를 유치하고 나니까 갑자기 공수도를 빼 버렸지.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시아공수도연맹에서도 항의에 항의를 거듭해서 겨우 대회 1년 전에야 공수도가 다시 정식종목이 될 수 있었다.

너희들하고 국제대회에 나가면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고 다닐 정도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회장님, 한국은 왜 그래요. 왜 그렇게 약속을 안 지켜요?"라고 힐난할 때 우리 잘못이 아니면서도 뭐라고 할 말이 없다고 권홍이는 분통을 터뜨렸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욕을 하면서도 그래도 내 열정만은 알아주더구나. 그 덕분에 동아시아공수도연맹 부회장, 아시아공수도연맹 부회장을 차례로 맡을 수 있었지.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 공수도가 조금만 더 자리를 확고하게 잡았다면 아시아연맹 회장도 벌써 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일홍아, 권홍아. 나는 내년 9월을 무척 기다린다. 그때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2016년 올림픽 프로그램 선정 투표가 실시된다. 공수도가 과거 두 번이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기대가 크다. 올림픽 종목만 되면 공수도가 전국체육대회 정식종목이 되고, 그렇게 되면 실업팀도 생기고 선수도 늘어나리라 믿는다. 

2019년이면 대한공수도연맹 창설 50주년이 되는구나. 그때쯤이면 공수도도 더 이상 억압받지 않고 우리나라 체육의 한 주역으로 떳떳이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겠지? 50주년 창립 기념식 때 내가 미경이, 일홍이, 권홍이랑 함께 모여 옛날 어려웠던 시절 이야기를 나누면서 껄껄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부산일보)

약력

1944년경남 하동 출생

1962년공수도장 개관

1969년대한공수도연맹 창립

1992년세계공수도연맹 가입

2005년코리아오픈 공수도대회 창설

2008년 7월아시아유소년국제대회 단장

2009년 2월대한체육회 감사

2010년 8월동아시아공수도연맹 부회장

2011년 7월아시아공수도연맹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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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무총인2012.08.27 18:55

 

남민전 사건 10년 복역 ‘무예도보통지’ 독학
89년 도장 세워 “무형문화재로 지정해주길”

칼 잡은 손이 떨린다.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그러나 진하게 바람을 가른다. 허공을 가득 메운 개나리와 벛꽃 향기마저 칼날의 궤적을 따라 나뉘어지는 듯 하다. 가쁜 숨을 내쉰다.

“이젠 옛날 같지 않아.”

지난 6일 국립민속박물관 앞마당, 초등학생부터 직장인, 여성 등으로 이뤄진 한 무리의 전통무예 시연단 속에 선 ‘백발 무인’의 눈빛이 매섭다. 한국 전통무예 가운데 하나인 ‘24반 무예’를 전수하고 있는 임동규(사진)씨다.

유신정권 말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0년간 옥살이를 하며 독학으로 <무예도보통지>를 익힌 독특한 이력 덕분에 ‘빗자루 도사’란 별칭으로 더 유명한 그다. 20년 가까이 광주 용진산자락에서 ‘경당’을 열어 무술을 전수하고 잇는 그가 제자들을 거느리고 서울까지 직접 나들이를 한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지난 2월에 3년 넘는 진통과 논란 끝에 전통무예진흥법이 통과됐어요. 지금까지 전통무예라면 태권도나 택견 정도만이 알려져 있었고, 상대적으로 다양한 우리 고유 무술들에 대한 지원은 근거법이 없다는 이유로 소홀했었거든요. 뒤늦게나마 인식이 바뀌어 널리 보급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난 1998년과 2007년 두 차례 문화재 당국자들로부터 ‘24반 무예’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도록 신청을 하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자료 부족이니 연구 부족이니 하는 이유로 실무자급에서 번번이 보류가 돼버렸다고 그는 안타까워했다.


‘24반 무예’는 200년 전 정조가 당시 무술을 종합해 군인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만든 교습서인 <무예도보통지>를 보며 그가 하나하나 재현해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통혁당 재건기도 사건’과 ‘남민전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그는 79년부터 가석방된 88년까지 빗자루와 걸레 자루를 도구삼아 유신정권으로부터 당한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되살리고 꼿꼿한 정신을 지켰다. 열두 살 때 쌀 한가마니를 번쩍 들었던 ‘소년 장사’ 씨름선수이자, 유도 명문 광주일고 1학년 때 상급생들을 모두 매다꼰으며 유도부를 접수했던 만능운동선수였던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출옥 뒤 1면 만에 고구려시대의 평민 자제 교육기관 이름을 따 문을 연 ‘경당’은 한때 대학가 등에 400여 개의 동아리가 생길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그런 만큼 뒤늦게나마 전통무예에 대한 정책 당국자들의 인식과 대중들의 관심이 더 커지길 바라는 그의 목소리는 간절하기 그지 없다.

“내가 조선시대 태어났다해도 지금처럼 전통무술을 집대성하는 일을 했을 것이여. 몸이 건강해야 정신이 건강한 법이니께”.

글·사진 이길우 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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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국 somakorea
언론속의 무총인2012.08.27 18:35

 

“세계적인 스포츠로 거듭난 태권도만큼 우리 전통무예인 해동검도를 세계화하는데 힘쓰겠습니다.”

김정호 세계해동검도연맹 총재는 15일 대전에서 열린 ‘제6회 해동검도 세계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해동검도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해동검도 세계화의 선봉에 선 김 총재는 “2002년 첫 대회를 개최한 후 줄곧 용평에서 대회를 열어왔다. 올해는 특별히 해동검도 30주년을 맞아 과학과 교통의 중심지인 대전에서 대회를 열기로 뜻을 모으고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자평했다.

김 총재는 “일본에서 전해진 검도는 스포츠화 되며 발전해왔고 이와 달리 해동검도는 우리나라 전통 무예로 목검과 진검을 사용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겨루기를 하는 ‘격검’과 태권도의 품세와 같은 ‘검법’, 종이와 대나무 등을 자르는 ‘베기’ 등으로 실력을 겨룬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계 어느 무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해동검도를 보급하는데 최선을 다해 나아가 종주국으로서 한국을 널리 알리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김 총재는 해동검도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무술을 총망라하는 ‘무림픽(Mulympic)’을 꿈꾸고 있다.
그는 “한국의 태권도와 해동검도, 일본의 가라데, 중국의 우슈 등 동양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에는 자국의 전통 무술들이 많다. 이러한 무술들을 통합하는 대회를 추진하고 있고 올림픽에 버금가는 ‘무림픽’으로 세계인들을 한국으로 불러 모을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무림픽’은 김 총재의 진두지휘 아래 순조롭게 준비되고 있으며, 내년 7월 용평에서 첫 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출처 : 금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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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무총인2012.08.27 18:27

 

8월 11일부터 사흘간 강원도 속초 영랑호에 있는 ‘화랑도체험장’에서 이색 대회가 열렸다. ‘인류의 문화유산-기사(騎士)’라는 주제로 개최한 세계기사선수권대회다. 지방권 뉴스에서 간단하게 소개한 행사였지만 미국, 일본, 이란, 브라질 등 전 세계 6개국에서 마상무예 선수단 60여 명이 참가한 세계적 대회다. 올해로 8회째라는 짧지 않은 ‘내공’도 지녔다. 게다가 유엔 산하 유네스코(UNESCO)를 비롯해 우리나라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체육진흥공단 등으로부터 공식 후원도 받는다.

줄곧 이 대회를 주관해온 ㈔한민족전통마상무예격구협회 김영섭(55) 회장을 만났다. 세계 30여 개국이 참가하는 세계기사연맹 의장직도 겸임하는 김 회장은 세계 기사들의 ‘대부’로 통하는 인물이다. 이번 한국 대회의 종합우승자 알리(이란)를 비롯해 외국인 기사들은 김 회장 앞에서 마스터를 모시듯 깍듯한 태도를 보였다.

기사 하면 중세 유럽에서 말을 타고 철갑옷에 긴 창을 든 무사가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 세계기사선수권대회가 열린다는 것이 어쩐지 낯선 느낌이다.

“기사라는 단어가 나오면 중세 유럽보다 훨씬 앞선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나 덕흥리 벽화 고분 ‘기마사희도(騎馬射戱圖)’를 연상하는 것이 순서일 텐데, 우리가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한 때문이지 싶군요. 비슷한 예로 서양 폴로(POLO) 하면 말을 타고 시합하는 하키 같은 것으로 쉽게 연상하는데, 폴로보다 훨씬 재미있는 ‘격구’ 하면 대부분 잘 몰라요.”

김 회장이 지속적으로 세계대회를 여는 것도 대중에게 낯설어진 우리 전통의 마상무예를 친숙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아울러 그는 “마상무예를 전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인이 즐기는 스포츠로 도약할 수 있도록 마상무예를 현대식 게임 방식으로 발전시켰다”고 밝힌다. 그런 방식이 마상무예를 익히는 전 세계 기사들에게 먹혀들어 ‘스승’ 대접을 받는다는 것.

 

무예도보통지 복원

마상무예는 구체적으로 어떤 경기일까.

“마상무예는 사람과 말이 혼연일체가 돼 창, 검, 활 같은 무기를 다루는 무술이에요. 말에서 떨어지지 않고 무기를 잘 다루려면 고도의 집중력과 신체감각이 필요하죠. 그래서 조선시대 세종대왕도 마상무예 가운데 하나인 격구를 무인(武人)이 갖춰야 할 기술로 여겨 중요시했어요. 현재 세계기사연맹에서 공식 경기로 채택한 것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로 과녁 맞히기(단사, 속사, 연속사 3종목)와 모구(毛球)예요. 모구는 싸리나무로 60cm 크기의 구(球)를 만든 뒤 가죽으로 싼 공을 기사가 말을 타고 끌면서 내빼면, 상대편 기사가 뒤에서 쫓아가면서 활을 쏘아 공을 맞히는 경기인데 이번 대회에서는 동서양 대결로 치렀어요.”

내년에는 폴로를 능가하는 격구 경기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격구는 말을 타고 장시(杖匙)라는 채를 이용해 공을 골문에 넣는 경기다. T자형 채를 가진 폴로는 전후로만 움직일 수 있지만 장시는 전후좌우로 다 움직일 수 있어 훨씬 역동적이라고 한다.

김 회장은 현대인에게 잊혀가던 전통 마상무예를 복원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선조가 남긴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덕분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무예도보통지’에 기록된 마상무예의 경우 이론적 성격이 강했다. 기마를 위한 말 고르기, 말 길들이기, 낙마 방지법, 마상무예 실연상의 문제점 등 실제적인 내용이 누락된 것. 이러한 상황에서 마상무예를 복원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낙마로 인한 부상자가 속출했고 재정적 뒷받침도 전무해 오로지 정신력 하나로 문제를 해결해왔다고 한다. 이렇게 10여 년간 산고를 겪은 끝에 마침내 1994년 8월 28일 마상무예를 최초로 복원했다고 공식 발표했으며, 2002년 10월 1일 마상무예의 모든 복원 작업을 완료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은 마상무예에 관한 한 세계 제일의 실력과 기술을 갖추게 됐다.

 

최고의 문화 관광 콘텐츠

 

마상무예 종목인 모구.

김 회장은 이렇게 복원한 마상무예를 널리 알리려고 대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실제로 7월 강원도생활체육회(회장 임호순)와 공동으로 전국 7개 대학의 체육, 무술 전공 학생 30명을 대상으로 ‘마상무예 전수자 육성 교육’을 성황리에 마쳤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 가운데 상당수가 이들 전수자 교육을 받은 대학생이다.

김 회장이 마상무예에 바친 세월만 30년. 자신을 도가(道家) 무예 집안 출신이라고 밝힌 그는 운명처럼 마상무예 보급에 빠졌고, 우리식 마상무예 경기 방식을 세계인이 따라할 만큼 널리 퍼뜨렸다.

“전통 마상무예를 현대 경기 방식으로 퍼뜨리는 과정에서 우리 마상무예가 세계 규범이 돼버렸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나라가 종주국처럼 됐죠. 결국 전통 문화의 한류가 이루어진 셈이에요.”

김 회장은 그러면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결과는 이렇게 뿌듯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해도 성취하기 힘든 일을 개인이 이루기까지 지난했던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묻어 있었다. 김 회장은 중국이 1980년대에 100억 원이 넘는 투자로 소림무술을 전 세계에 알려 현재 막대한 관광수입을 올리는데, 우리 마상무예는 그것보다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자신한다. 마상무예는 문화, 관광, 교육이 한꺼번에 이뤄지는 훌륭한 문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출처 주간동아 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12/08/20/201208200500028/201208200500028_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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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무총인2012.08.27 18:17

 

77년 12월7일 문화체육관에서는 역사에 남을 빅이벤트가 펼쳐졌다. 프로레슬러 천규덕과 격투가 김귀진의 맞대결,다시 말해 국내 최초의 이종격투기가 벌어진 것이다. 정확히 6개월 전 일본에서 알리와 이노키가 맞붙었기 때문인지 마니아는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당시 천규덕은 삼척동자도 아는 인기 스타. 40대 중반이었지만 권투 태권도 유도 등으로 다듬은 몸은 건장했다. 반면 김귀진은 잘 알려지지 않은 무술인이었다. 하지만 격투기계에서는 이미 ‘김귀진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였다.

김귀진 대한종합무술 격투기협회 총재는 격투기의 창시자. 격투기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김총재는 “당시 스포츠신문을 통해 도전장을 냈는데 천규덕씨가 이를 받아들였다”면서 “이날 경기를 통해 격투기의 우수성을 알렸고 결국 사회단체에 등록할 수 있었다”며 당시를 술회했다.

전남 목포 태생인 김총재는 15세 때부터 유도를 시작해 권투 태권도 킥복싱 등 다양한 무술을 익혔다. 64년 전주에서 처음 스파르타체육관을 세웠지만 65년 일본으로부터 킥복싱이 유입되면서 통합됐다. 하지만 킥복싱의 사회단체 등록이 무산되자 김총재는 “다양한 무술을 한 가지로 결합시켜 강력한 무술을 탄생시키겠다”고 결심했고 수개월간의 노력 끝에 ‘격투기’란 종목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당시에는 명함을 내밀면 개나 소싸움으로 오인했다. 69년 동양방송 개국기념 행사에 첫선을 보인 격투기는 79년 사회단체로 등록된 이후 급성장했고 현재 미국 독일 등 6개 해외지부와 180여개 국내지부를 두고 있다.

이같은 성장은 김총재 개인 능력이 뒤받침된 성과물. 한창때 180㎝,115㎏의 육중한 체구이면서도 날렵하기 이를 데 없었던 그는 손과 발을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사용했다. 특히 상대의 안면을 향한 앞차기는 가히 일품이었다는 것이 주위의 귀띔이다. 김총재는 “격투기는 무술을 경기화한 종목이다. 치고 차고 던지는 종합 실전무술이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10여만명의 제자를 길러낸 그는 “지금도 후배들에게 막말을 하지 않는다. 인격을 갖춰야만 진정한 무술인이 될 수 있다. 다른 무술에 대하는 마음자세도 마찬가지다”고 예의를 강조했다.

 

무카스기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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