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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무총인

격투기창시자 김귀진총재

 

77년 12월7일 문화체육관에서는 역사에 남을 빅이벤트가 펼쳐졌다. 프로레슬러 천규덕과 격투가 김귀진의 맞대결,다시 말해 국내 최초의 이종격투기가 벌어진 것이다. 정확히 6개월 전 일본에서 알리와 이노키가 맞붙었기 때문인지 마니아는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당시 천규덕은 삼척동자도 아는 인기 스타. 40대 중반이었지만 권투 태권도 유도 등으로 다듬은 몸은 건장했다. 반면 김귀진은 잘 알려지지 않은 무술인이었다. 하지만 격투기계에서는 이미 ‘김귀진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였다.

김귀진 대한종합무술 격투기협회 총재는 격투기의 창시자. 격투기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김총재는 “당시 스포츠신문을 통해 도전장을 냈는데 천규덕씨가 이를 받아들였다”면서 “이날 경기를 통해 격투기의 우수성을 알렸고 결국 사회단체에 등록할 수 있었다”며 당시를 술회했다.

전남 목포 태생인 김총재는 15세 때부터 유도를 시작해 권투 태권도 킥복싱 등 다양한 무술을 익혔다. 64년 전주에서 처음 스파르타체육관을 세웠지만 65년 일본으로부터 킥복싱이 유입되면서 통합됐다. 하지만 킥복싱의 사회단체 등록이 무산되자 김총재는 “다양한 무술을 한 가지로 결합시켜 강력한 무술을 탄생시키겠다”고 결심했고 수개월간의 노력 끝에 ‘격투기’란 종목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당시에는 명함을 내밀면 개나 소싸움으로 오인했다. 69년 동양방송 개국기념 행사에 첫선을 보인 격투기는 79년 사회단체로 등록된 이후 급성장했고 현재 미국 독일 등 6개 해외지부와 180여개 국내지부를 두고 있다.

이같은 성장은 김총재 개인 능력이 뒤받침된 성과물. 한창때 180㎝,115㎏의 육중한 체구이면서도 날렵하기 이를 데 없었던 그는 손과 발을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사용했다. 특히 상대의 안면을 향한 앞차기는 가히 일품이었다는 것이 주위의 귀띔이다. 김총재는 “격투기는 무술을 경기화한 종목이다. 치고 차고 던지는 종합 실전무술이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10여만명의 제자를 길러낸 그는 “지금도 후배들에게 막말을 하지 않는다. 인격을 갖춰야만 진정한 무술인이 될 수 있다. 다른 무술에 대하는 마음자세도 마찬가지다”고 예의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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