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공무술 창시자가 되기까지 | ||||
국제특공무술연합회 박노원 회장(2) | ||||
그러던 중 성남 비행장에 위치한 K16부대 미군 5-6명을 개인지도 형태로 가르치게 됐다. 이때 한 달 관비는 1만원 정도였던 반면, 개인지도는 10만원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났고, 이러한 인연으로 K16부대 한국경비대대 대원 50여명을 가르칠 수 있었다. 가르치는 것에 소질이 있음을 깨달았다. 1977년 7월, 영장이 나와 논산 훈련소에 입소한 뒤, 유단자 이력으로 일종의 특수부대였던 헌병 특별경호대로 배치됐다. 이때부터는 말 그대로 물 만난 물고기나 다름이 없었다. 각종 사격대회, 태권도대회에 나가 수차례 우승을 거머쥐었고, 휴가가 너무 많아 정규 휴가는 반납할 지경에 이르렀다. 휴가 중 한번은 중ㆍ고등학교 시절 내게 합기도를 가르쳤던 J총관장을 찾았다. 당시 그가 운영하던 서울 화곡동 도장은 관원 수가 20여명이 불과했다. 그는 내게 힘들다며 도움을 청했다. 생각할 것도 없이 도와주겠노라 약속했다. 제대 직전, 사격을 잘해 태릉선수촌 입교 제안이 왔지만 고민할 것도 없이 거절했다. 내가 갈 길은 무예인으로서의 삶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무렵, 군에서는 실전 무술이 급부상하던 시절이었다. 태권도는 최소 1년을 배워야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군은, 3~6개월 내 배워 익힐 수 있는 실전 무술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건물은 물론, 비행기 안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응용력과 총과 같은 주변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무술, 여기에 단체 교육이 가능하면서도 일격에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새로운 무술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군의 제안에 합기도 35%, 타 무술 20%을 기반으로, 계속된 시행착오 끝에 새로운 무술의 골격을 완성시켰다. 수개월 뒤, 5공수여단 장기호 장군 앞에서 해당 무술을 시연했다. 왜 두 손을 모두 펴느냐며 양쪽 다 주먹을 쥐는 것을 권했다. 이에 한쪽은 공격용으로 주먹을, 다른 쪽은 방어용으로 손바닥을 펴는 것으로 합의점을 찾았다. 군인들은 지금도 이렇게 배운다. 사실상 주먹을 쥐는 것 보다 손바닥을 가볍게 펴는 게 무난하긴 하다. 그간 익혀왔던 태권도, 합기도, 쿵후, 역도, 복싱, 육체미, 유도, 검도, 봉술, 요가, 킥복싱의 장점들을 모두 집대성하기 시작했다. 이후 3개월간 하루 10시간씩 군인들을 가르치면서 보완하는 과정을 병행했다. 스스로가 무술 창시에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났다고 생각할 만큼 뛰어난 무술이 탄생했다. 이때 완성된 것이 현재의 특공무술이다. 1980년 11월, 특채로 경찰대학 무도교관으로 가게 됐다. 태권도와 체포술, 합기도 등 3가지를 경찰들에게 가르쳤다. 경찰 교관으로 가게 되자, 내게 특공무술을 배우던 군인들이 경찰대학 상무관에서 매주 2차례씩 특공무술을 배워갔다. 이후 1981년 4월 22일, 육군본부 연병장에서 시범을 보였고, 육군참모총장 승인 하에 육군진중무술로 채택됐다. 마침내, 육군의 공식 무술이 된 순간이었다. ※위 내용은 박노원 회장의 주장을 근거로 작성된 것이며, J총관장 역시 박 회장의 요청에 의해 이니셜로 처리됐음을 밝힙니다. 무예신문 (http://mooye.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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